한 사람 전도하는데 100만원 잡으면^^ |
안녕하세요. 꿈꾸는교회에서 카작 목장을 섬기고 있는 목녀 임은주 집사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간증으로 섬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꿈꾸는교회에 2012년 1월 등록하여 1년 동안 <목사님 목장>에서 목원으로 은혜를 받고, 그 해 12월 분가하여 <카작목장>을 섬긴지 1년 3개월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네 가정이 한 목장을 이루어 분가시키고, 현재 남은 네 가정을 섬기고 있습니다.
목장을 섬기면서 주신 은혜를 종합해 한 마디로 말하라 하면
목장은 '쉼'이고 '삶'이며 '꿈'이라는 이 세 단어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저는 불신 가정에서 자라던 중 초등학교 때 제 발로 교회에 갔습니다. 이 후 신앙생활 방황을 마치고 예배가 회복 된 것은 스물아홉살, 그리고 인생의 고비 서른 다섯 살에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해 겨울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그 일이 제 인생에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던 아빠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힘겨워서 깊은 밤 성전에서 울고 울다가 하나님의 마음을 옅 보게 되었습니다. 한 아버지의 죽음에 앞서 매일 수많은 자식들이 지옥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을 알게 되고는 그 눈물이 내 눈물이 되었습니다. 그 일로 주님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되어 전도하는 일에 열심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보면 내 아버지로 여겨져 전도했는데 전도하고, 전도한 사람 양육하여 교회에 정착하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열정은 있고 열매는 없는 사역에 지칠 때쯤 싱가포르의 G12 셀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부흥을 보니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거다” 생각했습니다. 그 시스템이 비젼인줄 알고 10년 동안 제 마음 속에 사역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럴즈음 인터넷에 G12에 대하여 불편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참 어이 없는 것은 오랜 관계, 깊은 사이라고 생각했던 셀 식구들이 그 이유로 모두 흩어져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한 명도 안 남고 다 떠나는지요. 그 당시 섬기던 가정이 모두 등을 돌리고 떠났습니다.
맡겨준 양들을 흩어지게 했다는 하나님께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 수치심으로 힘들었습니다. 난 실패자다, 그렇게 힘들게 참고 사역했는데 결론이 이거구나 생각하니 마음의 관절이 나가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2년을 지냈습니다. 가족 식구들 아침에 나가면 하루종일 울다가 자고 또 울고... 정말 그들을 사랑했거든요.
그 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을 지었는데도 그 새 집에서 우울하게 첫 겨울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한국교회 소망 없다, 그러니 소망 없는 한국교회에 더 헌신할 필요 없다, 너무 힘드니까 무슨 결론이라도 내려야할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집 앞에 있는 꿈꾸는교회에 등록했습니다. 주일 예배는 드려야 하니까요. 가정교회 하는 교회라는데 그게 뭔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사람 만나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만 드리면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거예요. 예배마다 성령님이 강력히 저를 만지셨습니다. 상처를 싸매시고 달래주셨어요. 예배에서 위로와 말할 수 없는 치유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내게 일어난 사건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예배 후 결단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주님 왜 이러세요! 저도 결단했습니다. 다신 결단 안 하기로요.”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또 한 번 울고 다녔습니다.
등록 후 담임 목사님께서 첫 심방을 오신 날, 마태복음 6;장 3절 말씀을 주시면서 목자 목녀 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시큰둥한 저와는 달리 난데없이 남편이 “아멘"하며 유쾌하게 대답하는 겁니다. 그러고는 <목사님목장>으로 초청되었습니다.
목장 갔더니 밥 먹고, 감사한 일 몇마디 하고, 애들 보느라 집중도 안 되는데다가 조금 있으니까 가라고 다음 주에 보자구 하셔요. ‘아, 오늘은 오리엔테이션이구나. 담주부터 제대로 있나보다’ 생각하고 담주에 가니까 밥 먹고, 애들 땜에 정신없고, 감사 몇 마디 하다가 또 담주에 봅시다^^- ‘맨날 오리엔테이션만 해!’ 그래서 다음엔 남편 혼자 가시라구 그랬어요. 그런데 웬걸 주중에 전활 하셔서 “집사님 뭐해요 우리 밥 먹을까” 주중에 또 밥을 먹자시는거에요. 아! 또 밥!!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목사님 왜요? 무슨 이유라도….” “무슨- 밥 먹는데 이유가 있어요. 껄껄껄 --” 남편은 현관에 미리 나가 있으니 또 따라 나서고… 목장은 참 어설프고 불완전해 보였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풀어줄 아무 매력도 없어보였습니다. 게다가 주제도 없고, 답도 없이 다 제각기 자기 얘기만 했습니다.
제게 신앙생활을 하며 체험되지 않는 숙제가 있었는데 '기쁨 , 즐거움, 평안'이란 단어였습니다. 한 번은 전도대상자 앞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참 좋다고, 마음이 참 평안하다고 전하며 예수님 자랑을 하는데 그 분이 저를 보면서 “근데요- 참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다음 날 새벽 기도하며 저는 그분의 눈이 사실이라고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고단하다고 실토하며 울었습니다. 그 일은 신앙생활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지만 다들 그러고 사니까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혼자 열심히 경건서적만 사다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 기도로 구했던 것은 주 안의 기쁨이었는데 이 단어가 처음 경험 되어진 것이 목장입니다. 남편에게 끌려가듯 다닌 목장에서 두 분 목사님 사모님이 당신들 얘기를 하셨습니다. 들어보니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참 자유해 보였어요. 속으로 ‘나도 힘들었는데 두 분은 그게 상처가 안 되네. 위기가 많았는데도 극복하고 참 밝게 웃고 계시구나‘ 생각했어요.
그 건강함이 전이 되었는지 저도 <목사님목장>에서 오랜 만에 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책임질 것을 염려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도 좋고요.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설거지 걱정 안하고 오랜만에 편하게 웃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남편과 싸운 얘기, 아픈 얘기 억울한 얘기…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운 거예요. 처음엔 그게 기쁨인지도 몰랐어요. 목장에서 – 사는 게 힘들었다고 -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옆에 두고 사람들에게 살짝 남편이 고생시킨 걸 내비쳤는데 너무 시원한 거예요. 무조건 끄덕여주는 목자 목녀님 덕분에 탄력을 받고 보니 재미있어지고 남편도 그 일로 화를 안 내는 게 신기했어요. ‘내 편이 있었구나!’ 내 편이 생긴 안정감이어서인지 체중이 3KG이나 늘고, 관계로 얻은 상처가 관계로 풀려가며 삶이 섞이고 매일 보고 싶어 번개팅이란 것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얼어버린 내 심장을 끌어 안으시고 조금씩 녹이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강대상에서 사자처럼 말씀을 전하실 때 빼고는 늘 맛있는 간식을 숨겨두셨다 주시는 외가댁 사랑방 외할아버지처럼 교회에 계시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뭐라도 먹이셨습니다. 우린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어린아이처럼 맛있게 받아 먹었습니다. 제게 교회란 곳은 사역의 훈련장, 일하는 곳, 영적 전투, 배우고 듣고 변화 되어야만 하는 곳이었는데 목사님을 만나고 교회란 곳이 겨울 화롯불을 앞에 둔 사랑방 아랫목 같은 곳이 되어갔습니다. 목사님은 기꺼이 시간과 마음과 물질의 희생을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기껍게 섬기시자 저희들도 서로서로 섬기고 싶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너진 폐허 위에 주님이 다시 건축하신 건 신뢰였습니다.
목사님이 제일 많이 했던 질문입니다. “집사님! 행복해? ” “괜찮아 -- 다 설명 하려고 하지마. 세월 지나야 이해되는 게 더 많다. 내 죄가 어떻든 무엇 때문이든 괜찮아" 였습니다. 앞선 사람이 확신하지 않는 걸 성도들이 따라 올 수 없으니 겉옷을 벗고 직접 섬겨보겠다고 시작하신 <목사님목장>에서 제가 먹은 건 밥이 아니라 친정 아빠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제일 좋은 것들 계절마다 최고의 반찬을 해서 주셨습니다. 헌신도 저렇게 유쾌하고 명랑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맛보아 알았습니다. “행복해? 괜찮아 -“
저도 저를 달랬습니다. “임은주! 괜찮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단다.” 이렇게 마음이 목장에서 회복이 되자 예배 시간 헌신대 앞에 무릎 꿇어 앉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주님의 부르심 앞에 섰습니다. 내가 다시 목녀를 한다는 것은 많은 다른 일 중 한 가지 일이 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고 이웃을 살리는 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명의 삶에서 배웠습니다.
이렇게 회복된 저희에게 모태신앙인 아내와 믿지 않는 남편으로 구성된 세 가정을 붙여 주셨는데 그들에게도 그저 저는 쉬게 해주고 싶었어요. 어떻하면 행복할까? 안식 - 주님이 우리에게 최고 주고 싶어 하시는 선물 아닐까요. 그래서 소위 집 밥을 해 먹었습니다. 편하게 먹고, 풍성히 먹고, 눈치 안보며, 먹을 수 있게 하고요. 사실 매주 마다 장을 보는데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서 처음엔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생각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남편의 사업장을 통해 물질을 부어 주셨습니다. 불신 남편들은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요즘 밥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맛있게 밥을 먹고 나면 다들 마음이 열렸고, 다음 날 주일 예배의 자리에서 흠뻑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삶공부를 시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밥짓는 사역을 매주 목원이 오든 안 오든 동일한 마음으로 했는데 두 달쯤 지났을 때 한 남자 목원이 나눔을 하다가 이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목장에 오니 어머니 차려주시던 밥상 같아 좋다고- 한참을 목메어 말을 잇지 못했고 탄탄해보이기만 했던 남편의 눈물을 본 아내는 그 눈물을 보고 기도하는 아내가 되어갔습니다. 우리 목장 남자들은 속 얘기를 목장에서만 하니까 아내들이 남편 얘기 들으러 더 열심히 나왔습니다. 그럼 우리가 웃으면서 묻습니다. “두 분이 한 집 사시죠?” 쉬면 회복하게 되어있고 쉬면 열매 맺게 되어 소위 말하는 목장 참석, 회복, 변화는 덤으로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내어 미는 기도 제목들 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며 옅은 믿음을 길러 가셨습니다. 6개월 마다 기도 제목을 다시 받아야 할 정도로 신속히 일하셨고 우린 그 때 마다 서로 한턱 내며 파티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집을 이사하고 새 집을 사도록 허락하시는 일. 자녀들의 변화, 남편의 회사일 건강문제 –
두 번째로 목장에서 원칙 삼은 것은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 이라는게 유치하고 사소하며 가끔은 볼품 없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제 바닥도 드러납니다. 부부관계, 내 자녀의 부족, 열등감, 자존심, 교만 ‘이런 거 다 보여주고 어찌 목녀하지?’ 싶은 모습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섬겨주신 목자 목녀님은 그것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족한걸 보이니 참 편한 목녀가 되었습니다. 한 번은 자진 등록한 새 가족이 목장에 들어왔는데 말과 행동이 거칠어 교회에서도 소문이 나고 저를 참 힘들게 했습니다. 사랑하기 힘들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엄마냐?” “엄마는 져주는 사람이란다." 불화하고, 교회든 사람이든 따지고 엉뚱하게 요구하고, 깎아내리는 그를 저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알면서 져주는 사람...
한 번은 사람 많은 카페에서 다른 성도와 마찰이 생기자 목녀가 그런 자기편을 안 들어준다고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네가 목녀 맞냐?”
불식간에 생긴 일이라 얼결에 달래서 집에 보내 놓고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눈물이 너무 나는 거예요. 남편에 들킬까봐 소리 죽여 울며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한지 다음날 새벽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 하나님! 교인들이 그를 싸이코패스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알기 쉽게 설명하십니다. “그가 세상에서 상처 받아서 그래. 그 모습이 바로 너다. 그들 때문에 교회가 있단다.“ "아, 아파서 그렇구나! 그 딸이 많이 아프구나. 그래, 교회의 자존심을 걸고 사랑해 보자. 가시를 꼭 끌어안는 아픔이 있어도 이 한 영혼 사랑하는 모습 보시고 다른 영혼도 주시겠구나. 주님이 계신 이 곳에서 저가 회복되지 않으면 어디서 되겠나. 주님의 사랑을 제게 더 부으소서."
세겹줄 기도회 때 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그 아들의 문제로 기도하다가 내 속에서 오열이 터져 나왔어요. 여자들은 울어주면 친해지는 뭐 그런거 있거든요. 한참 울다가 그냥 둘이 마음이 깊어졌어요. 이제 그가 심하게 얘기 해도 아프지 않아요. 오히려 그가 미안해 해요. 자기가 변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고요. 나중 믿은 그녀의 남편은 아내를 꼭 목장에 데리고 와요. 목장 다녀가면 아내의 상태가 훨씬 좋아진다고 하면서요.^^
처음엔 변화시켜보려고 했습니다. 모태신앙의 미지근한 아내들과 믿지 않는 남편들의 신앙을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고민도 하고 기도하던 중 “삶“이란 단어가 들어왔습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아. 가정교회는 제자 파이널 코스구나. 살아내야 하는구나." 그래서 여자 목원들을 한 사람씩 확신의 삶 양육을 하게 됐는데 그 때 여자목원들과 영적인 교제를 깊게 하며 삶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제를 듣고 기도해 주지만 한 발 나아가서 변화를 위한 두려움과 함께 해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문제를 듣고 삶에서 가사도우미처럼 장을 같이 보고 냉장고 정리하는 법 , 제철 음식 저장하는 법, 또 실지로 전도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들어주며 영혼을 돌보는 사역에 대해 함께 도왔습니다.
시댁 부모님과 관계가 안 좋은 목원과는 시댁 부모님을 함께 방문해서 위로해드리기도 하고요. 관계를 어려워하는 사람과는 자기의 내면을 건강히 할 수 있도록 칭찬과 격려로 도와주고요.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은 헌금 생활과 남편을 잘 섬기고 세워주기 위해 지혜를 모으기도 하고요.
우수한 대학을 나와도 안 되는 건 삶입니다. 그러나 살아내는 게 파워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마음의 허영을 버리고 현실직면하기, 카드빚 지지 않기, 말씀 받고 인내하기, 어려운 시댁 살림을 돕기 위해 내 소비를 줄이기, 부부간에 하나됨을 위해 버려야할 것, 말씀대로 살아 반석위에 서도록 격려하고 야단도 치고. 주님 앞에 새벽 마다 앉도록 도우며 삶을 섞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목장은 일주일 내내 사역이 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내들의 변화로 남편들이 세워져 갔습니다.
힘든 사람은 초신자가 아니라 기존신자입니다. 전통 교회에서 오래된 신앙은 목자 목녀의 위임된 권위를 인정하기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님만 찾습니다. 기도 응답되면 감사도 먼저 목사님을 찾습니다 . 그들은 쉽게 변하지는 않고 불안해는 합니다. 그리고 한결 같이 말합니다. “이 교회는 너무 목장 위주야-” 그건 그들이 영적인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소외된 아픈 마음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저도 낡은 지도 버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이해합니다. 그러나 말합니다. “목장이 있는 교회가 아니라 목장교회가 될 때까지 더 목장 위주가 되어야해." 그들에게는 예와 아니오를 정확히 해주되 당신이 우리 목장에서 참 필요한 사람이란걸 강조합니다. 그들을 변화시킬 힘은 더 큰 헌신과 더 큰 섬김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한 목장 안에 생명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그들은 도전 받습니다. 그러나 방해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일 만큼은 그들 때문에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쌓였던 영적인 재료들을 새롭게 하셔서 더 크게 쓰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양육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목녀 하며 깎이고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저도 그대로 투명하게 목장에서 나눕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이상하게 나는 자유해지고 목원들과는 친해졌습니다. 투명하면 사람을 얻는다는 걸 알고 나니 관계가 편안한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삶이 사소한 것처럼 여자 목원들은 사소한 일에 시기 하고 질투하며 다퉜습니다. 큐티하며 언성을 높이다가 울기도 하고 목장에 안 오기도 합니다. 자기를 무시한다고 삐지기를 수시반복입니다. 목장에서는 북한 문제로 고민하지 않구요. 송도의 이슬람대학이 문을 연다고 금식하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 남편이 돋보이지 않아 속상해 하고, 자기 자녀가 으뜸되지 않아 화가 납니다. 자기 죄가 드러나서 수치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변화된 목자의 삶에 도전을 받아 자기 남편도 주초를 끊고 새벽에 성전에 앉기를 구하게 되고 지지고 볶는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는 목자 목녀의 모습에 도전을 받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람은 배워서가 아니라 보면서 변화되어 가더라구요. 이제 목원들 스스로, 자아를 이기는 성령님을 구하는 것은 기도 뿐인걸 알아가고 하나님을 체험해 가는 세대됨이 제 행복입니다.
세 번째로 목장하면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마음에 더 민감해집니다.
목장하기전 시편 126편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하나님의 꿈이 실현 될 때 우리도 너무 기뻤습니다. 정말 이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불신 남편을 초청하여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는데 그 남편분이 고기를 먹는다고 하니 선물을 사 오셨습니다. 소주 세 병! 목자가 흔쾌히 허락하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목원 중 아직 술을 하는 목원과 주고 받고 감사나눔까지 잘하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목장에 오게 된 그분이 몇 주 후 중2 큰 아들과의 갈등을 목장에서 오픈 하셨습니다. 아들 핸드폰에 “아빠 새끼 00 싫어” 라고 친구에게 보낸 문자를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매를 대고 쫓아냈는데 넘 맘이 아픈거죠. 아들이 사과하길 바라는데 안 한다고요. 우리도 애들 키우며 자식 한테 당한 얘기 한껏 해주고 헤어지고 저는 기도했는데 몇 주 후 아들이 정성껏 반성문 써 왔다고 고맙다고 – 보신탕을 쏘겠다고 하시며 그게 기도응답 같은 생각이 든다고요.
이후로는 그 아들 설득해 목장 체육대회도 잘 오셨습니다. 소주병도 보신탕도 뛰어넘은 그 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에 우린 행복했습니다.
참 희한한 것은 사람들은 목장에 오면 맘이 열리는 것입니다
남편과 목녀인 저는 행복합니다. 지금껏 목원 들의 행복한 일들을 전해 드렸지만 사실 제일로 행복한 건 저희 부부입니다. 몇 해 전 만해도 새벽녘에 핸드폰이 울리면 이름이 뜹니다. ‘00 지구대 경찰 아저씨’- 아예 저장이 돼 있어요. 그 지역이 저희 남편이 가는 회식 장소가 있는 곳이라서요. 그 경찰 아저씨 구역이라. 취해서 꼼짝 안하는 남편 찾아가라는 전화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허겁지겁 나가보면 참담한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집에 뉘어놓고 자는 것 보고 새벽기도 가면 눈물만 나오죠. -그 아들을 살려 달라고 – 정말 긴 세월을 울었습니다.
이런 세상의 결박들 끊고 싶지만 불가항력적인 습관들 제자훈련 사역훈련 이런저런 훈련들 다 받고 주일예배 안 빠지고 교사도 하고 직분도 받지만 하나님을 체험 하지 못하는 힘겨운 짐만 되는 신앙생활 – 본인도 그 안의 갈등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닙니다. 시아버님 유언으로도 내가 내미는 이혼장충격요법으로도 안 됐습니다. 그런 남편이 목장을 만나고 “참 좋다- 참 편안하다 – 참 자연스럽다” 고 하고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다나. 그러면서 목장 가는 날마다 먼저 나서더니 새벽에 먼저 나서고 기도회마다 먼저 나가고 성령 집회 때 목사님 안수를 받고 뒤로 나가 떨어진 후 인생이 달라졌어요. 하나님 말씀엔 무조건 순종, 모든 우선순위가 하나님 그리고 목장 지금도 새벽에 벨이 울립니다. 지구대 경찰이 아니라 새벽기도 알람입니다. 둘이 첫 호흡을 하나님께 드리는 새벽사람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목장 체육대회 하던 날은 두 눈에 결막염이 심해 진물과 땀을 함께 닦아내며 공을 치는데 그 남편은 더 이상 교회 가지 말라고 핍박하던 남편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얻은 남편이었습니다. 너무나 행복한 목장지기 생활입니다. 목원들의 못마땅한 모습을 볼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우린 얼굴을 서로 보며 복창합니다. “우리가 더 잘합시다. 내가 제자가 더 되어야 한다는 싸인이다.” “여보 우린 복사되고 있어요.”- 제자는 전수되는 것이라고 생명의 삶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행복도 복사되고 전수될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도 잘 드러내주는 남편의 마음 속엔 매일 매일 주님을 향한 사랑이 강물처럼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영향력은 놀랍습니다.
회사에서도 부사장님 덕분에 자기 남편들이 변하고 술을 덜 먹는다고 친절한 멘토링에 아내들이 인사를 합니다. 신분을 숨기고 살던 목사님 아들도 회심하고 새벽기도 자리에 앉았답니다. 찬양대에서 구운 CD에 감사 카드를 보내 왔더라구요,
이제 직원들을 목장으로 데리고 오기 위해 기도 중에 있습니다. 직장이 집에서 가까운데 제가 직원들을 점심에 초대해서 해 드리려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삶의 풀어짐은 다 간증할 수가 없습니다. 큰 아들이 군대에서 십일조하는 모습을 보고 선임이 추천해 장군 운전병이 된 일, 작은 아들이 유학할 때쯤 학비와 딱 맞는 달라를 공급하신 일(한 번도 한화를 달라로 바꿔본 적이 없이), 회사가 동판교 테크노벨리로 이사하게 된 일, 친정 우울증으로 3년 동안 시체놀이 하던 남동생이 어느 날 일어나 치료받고 자기발로 교회를 간 일, 목자 목녀 하며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 간증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물들도 사람이 살아나고 회복되는 것을 보는 우리의 기쁨에 비하면 옵션입니다. 주님의 생명에 동참하는 기쁨은 이 땅의 기복신앙에서 저희를 탈출시켰습니다. “복을 주시든 안주시든 하나님 마음이지만 저희는 이일만 계속하게 해 주세요“- 둘이 기도가 바뀌어갑니다. 그런데 돈을 주시려면 좀 많이 주세요^^ 영혼을 위해 쓰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 일을 계속 해 나가려고 합니다. 목장을 위한 회사. 목장을 위한 삶. 목장이 번지는 동네 영혼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이번 첫 분가를 한 가정 이야기입니다. 명문대를 나온 부부에게 외아들이 ADHD증상이 있어 아내는 직장을 포기했는데 설상가상 남편은 벤처회사가 망했고, 다른 사람 빚까지 엎어 써 아내 모르게 빚쟁이로 두 개의 일을 하며 고단하게 살던 30대 중반 부부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집 앞에 와 이런 모든 사연을 쏟아내는데 맘이 너무 아파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반찬만 보면 날라다주고 전세가 없어서 발 동동 구를 땐 우리집에서 같이 살라고 했어요, 목장에서 나이로는 막내였는데 두 사람이 아들의 언어 치료비 70만원을 하나님께 종자씨로 드리고, 기도로 하나님을 기대해보자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목장에 참석하며 부부가 회복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일을 잘해 사장님이 빚을 다 변상해주는 놀라운 일이 있고 아들은 놀랍게도 혀가 풀어지고 잘 자라 정상적인 유치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 새롭게 회사를 다시 시작하는 기회를 주셔서 지금 사장님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2년 안에 생긴 일이며 그가 침례받은 지는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가 목자로 자원하여 헌신하였고 지난달 분가를 했습니다.
목장은 이것이 가능합니다. 목장은 평신도 사역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내가 결단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피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려는 사람이 젤로 부담스러운 법인데 내가 성경 공부를 시키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처럼 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참 편했습니다. 평신도들이 세상에 나가 예수님처럼 삶을 살고 주님으로 승리해 나가는 하루하루를 나누는 겁니다. 사역의 분담에 자유함의 비밀이 있습니다. 이번 분가가 더 의미가 있는 것은 분가해서 나간가정들을 모두 그 목자 목녀가 전도한 가정들입니다.
본인들의 회복은 그들의 삶에 영향력이 있었고 목장에서 하던 나눔이 연습이 돼서 그런 일 들을 자랑했고 이웃들이 듣고 부러워했으며, 또 그들을 섬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도 목원이 애들까지 30명이 넘는데 분가할 생각을 안내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밥 하기도 힘들고 빠지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니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의 동기를 점검하셨습니다. “숫적 분가가 목적인가? 제자가 목적인가?“ 내 맘에 동기를 점검하고 생각하며 분가가 목적이 아니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일은 제자삼는 일입니다. 그것도 사람의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정말 이 일들을 하다 보면 영혼을 사랑하고 제자 삼기 위해 둥지가 필요하고 따뜻한 둥지가 바로 목장이라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전도를 혼자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전도를 못하는 사람들도 간접적으로 돕는다는 위로감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간증으로 제 말을 마칠까 합니다.
얼마 전 저는 13년 만에 전화 한 통을 한 여자분 에게 드렸습니다. 그 당시 불신자였던 그분에게 전도폭발 45분 복음을 제시하고 어렵게 예수영접을 하고 영접기도를 한 후 교회에 정착하여 신앙생활 했는데 미국에 이민 가게 돼 근황을 알 수 없다가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전히 세상적이고 여전히 세상 사람으로 있는 그 분에게 “예수님 잘 믿으세요” 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심하게 가슴에 통증이 왔습니다. 제가 그분을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은 13년 전 핸드펀을 꺼놓고 그분에게 복음을 제시했던 그 세 시간 동안 제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수없이 찍힌 수신표시를 보며 만약 그 핸펀으로 저와 통화가 됐다면 아빠는 안 돌아가셨을 수도 있었겠죠. 어떤 작은 은혜도 그 뒤에는 받는 사람이 알 수 없는 희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 치르신 십자가의 가치! 그 뒤의 하나님의 댓가, 눈물, 가슴의 통증 –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게 되어 그냥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 - 그것을 깨닫고 부족한 제 인생을 다시 드립니다.
저는 순종만으로 가는 미련하고 어린 목녀입니다. 그런데 나 같은 실패자. 눌린자. 포로 된 자들이 목장에서 살아납니다. 목장에 들어오는 가정들이 회복되어져 갑니다. 난 그들을 위해 밥을 짓고 기도합니다. 내 두 아들을 위해 했듯 똑같이 가정을 위해 했던 일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목원들에게 묻습니다‘ “행복해? 그럼 됐어. 괜찮아! 다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마.“
저도 신기합니다. 주님의 방법이라서 그런가? 쉽고 가볍습니다. 주님 따라 나선 길, 남편과 함께 다시 신은 사역의 신발, 이제야 제대로 사는 것 같습니다.
저야 밥 짓던 아줌마인데 사랑하시는 주의 종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야 얼마나 클까 싶어 손서레치는 마음을 접고 감히 여러분 앞에 입을 열었습니다. 나의 벗겨짐이, 내 수치가 여러분에게 면류관이 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주 안의 안식(쉼)과 섬기는 삶과 시온의 포로가 돌아오는 꿈을 꾸는 행복한 목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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