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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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지 인생을 끝내야 합니다.
중 고등학생 때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서 선물 교환이란 걸 했습니다. 임원들이 책정한 예산의 범위 안에서 아무 거나 사오면 다른 사람이 사온 선물이랑 교환하는 거였죠. 내가 받은 건 아니지만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습니다. 큰 박스에서 시작해서 점점 작아지는 선물이었습니다. 큰 박스 안에 작은 박스, 그 안에 또 작은 박스, 이렇게 계속 작아지는 겁니다. 마지막에 아주 작은 박스가 나왔습니다. 모두다 마지막에 있을 선물은 반지같이 아주 작은 걸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 박스를 열어보니 조그맣게 돌돌 말린 편지가 나왔습니다. "포장지를 잘 챙기세요. 포장지 값 1,000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한 사람만 빼고요.....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포장지 인생을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빛나게 할 더 좋은 옷, 메이커 있는 신발, 화장, 심지어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 우리가 사는 집. 이 모든 것들이 진정한 필요 보다는 나를 포장하는 도구가 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이 좋은 포장지가 됩니다. 이런 포장지를 갖추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그리고 그 포장지를 가진 자는 교만하게 살고 포장지를 제대로 못 갖춘 사람은 열등감을 갖고 삽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성경 고린도 후서 4장에서는 성도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 성도는 질그릇에 불과한 연약한 인간입니다. 아무리 많은 포장지로 싸두어도 정확한 모습을 이야기 하자면 그건 질그릇입니다. 깨지기 쉽고 연약한 질그릇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포장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그 질그릇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겁니다. 같은 병에 약을 담으면 약병이 되고 술을 담으면 술병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거기서 결정 나는 겁니다. 남들이 볼 때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그 사람 안에 보배 되신 예수께서 계시는 순간 그는 가장 아름답고도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포장했나'보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에 의해서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가 결정됩니다. 보배 되신 예수님을 모신 것 때문에 귀중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 종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