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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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원주의 속에서 기독교와 무속
요즈음 나라 안에 무속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종교도 바뀌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들어와 자리 잡았다가 조선 시대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구한말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지금은 종교 다원주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대한 큰 자랑 중 하나는 그런 다양한 종교의 공존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수많은 전쟁의 원인은 종교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함에도 그 종교 때문에 큰 갈등이나 분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미국 CIA가 정리한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24%, 로마 가톨릭은 7.6%, 불교는 24.2%, 무교는 43.3%로 종교 면에서 매우 독특한 분할을 보입니다. 이런 분할 속에서 종교에의한 큰 다툼 없이 살아온 것은 유학이라는 합리성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모든 종교의 뿌리에 무속신앙이 공통적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무속신앙이 기독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가운데 하나는 삶과 죽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으며 죽음 이후의 세계가 현실 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복을 구한다고 하는 점에서 기독교와 무속은 유사합니다. 물론 그 복의 내용과 가르침은 다르지만 무속도 복을 구하고 기독교도 복을 구합니다. 아니 모든 종교는 다 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무속이 기독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수준을 떨어뜨린 것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를 보통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나누는데 고등종교는 공공성과 보편성이 있습니다. 공공성이라는 것은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 민족, 나라가 다 복을 받는 것입니다. 보편성은 공공장소에서 누군가와 손을 잡아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 보편성이 없으니까 은밀한 곳에서만 손을 잡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바로 이런 공공성과 보편성이 있는 고등종교입니다. 그러나 무속은 하등종교입니다. 신을 받아서 무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서 플래카드를 걸고 축하하고 환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는다고 하니까 겨우 눈물 흘리며 신을 받습니다. 무속은 내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내 민족이 망하든 흥하든 나만 복을 받으면 됩니다. 공공성이 없고 보편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공공성과 보편성이 없는 그 무속이 점점 기독교 안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점점 탈 역사적이고 비공동체적이고 반면에 개 교회 적이고 기복적이고 신비적인 기독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를 어떤 이는 “양복 입은 무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사람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감으로 무속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건강한 교회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 종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