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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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느낌을 넘어 삶 모습입니다.
우리는 주고받는 한마디의 말속에서도 말하는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느낍니다. 그가 얼마나 온유한 사람인가? 얼마나 관대한 사람인가? 얼마나 관용할 줄 아는 사람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 또 그와 반대로 얼마나 냉정한 사람이고 얼마나 차가운 사람인가? 하는 것도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통해서 따뜻함 부드러움 차가움 등을 느낍니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결국은 말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를 사랑하시고 형제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할 때 그 말에 엄청난 영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닫힌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입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함으로 영접하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이 자녀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라는 것이 중요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느낌에만 머물러 있으면 완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요일3:8)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이 패망한 사울의 유일한 남은 자손인 므비보셋을 왕궁에 데려오고 그의 이름을 불러 주며 왕의 상에서 먹고 왕궁에서 왕자로 자라게 하였을 때 지독한 치욕이라는 의미인 므비보셋은 다윗을 만남으로 왕자라는 가장 영광스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가 다윗을 만나기 전 어쩌면 그는 늘 원망하고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담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전가하는 인생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만나고 사랑스럽게 그의 이름으로 불러 주면서 그를 이름 없는 유랑자가 아니라 소중한 한 인격체로 불러 줄 때 그의 존재는 완전히 바꿔졌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조부인 사울의 모든 소유지를 넘겨주어 그로 하여금 자활할 수 있게 해줌으로 므비보셋을 진정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모습인 것임을 말씀해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관대하게 아낌없이 넘치도록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사 카드를 적어 보내는 정도의 감상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삶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상대방의 진정한 필요를 삶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꺼이 기쁨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한 사람의 인생은 피어나는 것입니다. 감정을 넘는 모습이 될 때 그것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으로 진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 종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