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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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바라보는 시각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요?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 주님의 눈은 긍휼히 여기는 눈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빗나가면 용납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부딪히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또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은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기독교의 진리가 아닌데도 마치 그것이 기독교의 진리인 것처럼 가장하여 성도들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주의’ 또는 ‘완벽주의’ 라는 것입니다. 완벽주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완전을 보면 참지 못합니다. 사실은 자신도 불완전하면서 다른 사람의 불완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죄하고 지적하고 탓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완전함을 늘 드러내며 살아갑니다. 기도할 때도 큰 소리로 기도하고 상에 앉을 때도 상석에 앉고 누가 봐도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바리새인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 아비는 마귀니라” 주님이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볼 때 항상 완전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도 합당한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늘 지적하고, 정죄합니다.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가 나타나면 도망갑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죄가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 주위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죄인이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바라볼 때 완전이라는 잣대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많은 허물이 있고, 약함과 부족이 있지만, 그것을 보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변화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 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담대하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마치 그리스도처럼 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긍휼의 눈으로 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눈, 우리 주님의 긍휼히 여기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것을 탓하지 말고 변화된 것을 인하여 칭찬하고 격려하며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 공동체가 누구든지 성숙한 자유인이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 종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