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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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자의 의도를 알아야
“내가 쓴 시가 나온 대입문제를 풀어봤는데 작가인 내가 모두 틀렸다”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시인인 최승호 시인이 서울시 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국어교사 400명을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한 말입니다. 최씨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돼 왔는데 이 문제를 자신이 풀 때마다 틀려서 이젠 더 이상 문제를 보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를 진짜 작가가 모른다면 누가 아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후안 까롤로스 목사님의 ‘제자입니까?“ 라는 책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울이 자신의 마음을 담아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지금의 교회들이 해석해 놓은 것을 정작 바울 자신이 보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라고 한 말을, 자기네들이 서로 모여 앉아 헬라어로 사랑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고 이 말을 한 배경은 무엇이고 바울의 사상은 무엇인지를 나누면서 정작 사랑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조금만 방심하면 이런 함정에 빠집니다. 깊이 있는 성경공부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끼리 둘러 앉아 서로 QT 한 것 나누고 발표하는 것만 좋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자체가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 말씀 하나 붙잡고 살아보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스스로 여깁니다. 매 설교에 은혜를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보람도 있고 격려도 됩니다. 그런데 계속 은혜만 받습니다. 여전히 은혜는 받는데 삶은 제자리입니다. 이 때 목회자의 보람은 안타까움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목장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교회들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에 있습니다. 지난 일 주일동안 살아 본 삶을 나누고 실천해 보는 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눔의 시간조차도 추상적인 결심만 반복할 수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기도하지 못했다, 성경보지 못했다, 부지런하지 못했다, 사랑하지 못했다, 이번 일 주일간 잘 하도록 기도해 달라”라는 나눔만 계속 반복하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이 추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삶에 구체적인 적용을 집어넣고 꼭 실천해 보아야 합니다. 출제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시를 느껴보라고 하는데 분석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살아보라고 하는데 감상하고 있으면 틀린 것입니다. 주일 전해지는 말씀에 한 가지 결단할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매 주 새로운 결단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겠다는 결단도 좋습니다. 그리고 살아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 종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