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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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지켜야 삽니다.
우리나라에 자동차 문화가 자리 잡던 70-80년대에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본 표어는 ‘선.선.선 선을 지키자’였습니다. 차선을 잘 지키자는 의미였지요. 그 전까지 교통질서는 군데군데 수신호를 하며 서 있는 교통경찰관들의 노력으로 이뤄졌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신호등의 보급과 더불어 자동차 운전자들 스스로가 교통질서를 지키는 방향으로 교통정책이 발전되어 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이 차선을 생명같이 지켜 운전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자동차 문화가 선진국인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제는 신호등을 없애고 차선도 없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율성을 강조하니까 더 성숙한 교통문화가 이뤄져서 사고율도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말 성숙한 경우의 얘기입니다. 그 전까지, 특히 초보 때에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 생명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를 재현해 보자’는 새로운 교회 시스템을 시도해 가는 초창기 단계입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를 이뤄 가는데 기준이 되고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원칙들을 정해 놓았습니다. 저는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해진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원칙을 지키는 못하는 상황들이 생겨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빡빡하게 원칙을 따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원칙에 대한 적용을 느슨하게 해 가다 보니, ‘과연 원칙과 관용의 균형은 어떤 모습일까?’가 고민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 목장의 운영방식, 예배의 자세, 사역자의 임명과 사역에 대한 원칙, 교인들의 교육과 훈련 등 모든 목회의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입니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니 원칙대로 하지 않고 좀 넘어갔던 일들에서는 원칙을 지킨 쪽에 비해서 늘 결과가 미진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결심하는 것이 다시 한 번 원칙을 적용하는 기준을 성실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교회는 봐 주고 챙겨주고 기다려 주면서 가는 치유공동체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소명을 이루는 사명공동체적 성격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초창기 때 선을 지키는 것이 자동차 문화를 이뤄갈 뿐만 아니라 보다 직접적으로는 운전자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원칙이었듯이 현재 가정교회를 이뤄가는 우리 교회에 있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의 제대로 된 믿음생활과 영적 성숙을 이루는데 있어 훨씬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러나 빡빡하게 적용되는 형태가 아니라 즐겁고 유쾌한 방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경찰관의 수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타율적인 모습이 아니라 운전자 스스로가 앞장 서 지켜가는 자율적인 모습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원칙이 사라져도 아무 문제가 없는 그런 성숙한 단계에 이르기를 소원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의 목사 김 종 석